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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과 모바일

1박2일 은지원이 보여준 역발상

by mindfree 2011. 1. 31.
1박2일의 아침 기상 미션은 승자가 아침밥을 얻고, 패자는 아침밥을 굶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기상음악이 울리면 전날 촬영에 쌓인 피로로 몰려오는 잠을 깨우며 빨리 일어나서 미션 수행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일요일 방송에서는 제작진이 이를 역으로 뒤집은 미션을 제시했다.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아침밥을 먹는게 아니라, 늦게 일어나는 사람이 아침밥을 먹는 방식. 생리현상을 참으며 버티는 팀에게 아침을 주겠다는 얘기다.

잠들기 전에는 코미디언팀과 가수팀으로 나눈 두 그룹이 '코미디언의 자존심', '가수의 자존심'을 외치며 절대 먼저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눈을 뜬 가수팀의 은지원은 전혀 엉뚱한 소리를 한다. 패배를 인정하되, 코미디언팀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나가겠다는 것이다. 은지원의 이 한 마디가 제작진이 바꿔놓은 기상미션의 맹점을 파고 들어 이를 역으로 뒤집어 버렸다.

원래 기상 미션은 승자에겐 보상(아침밥)이, 패자에겐 박탈감(아침을 굶는데다, 승자가 아침 먹는 걸 애타게 바라보기)을 주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기상 미션의 룰이 변경된 이상, 승자가 자신이 승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게 하면 패자에게 주는 박탈감은 거의 0에 가깝게 없어진다. 패자는 촬영을 종료하고 집에 가면 되니까. 밥이야 가는 길에 먹어도 된다. 바로 이 점이 제작진이 생각하지 못한 맹점이었고, 은지원은 이 맹점을 교묘히 파고 들어 게임의 룰을 뒤집어 버렸다. 자신에게 주어진 프레임을 일시에 해체해서 재구성해버린, 탁월한 발상이다.

몇 주 전에 포항에 결혼식이 있어 다녀왔다. 결혼식에 가야 한다는 것만 생각하고 '어떻게' 갈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탓에 전날 밤에 급하게 아이폰으로 기차 예약 앱을 다운받아 설치하고, 기차편을 예매했다. 차편을 예매하면서 보니 기차와 버스 모두 출발시간을 기준으로 차편을 검색하는 방식이다. 기차, 버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상 거의 모든 대중 교통은 출발지의 시간을 기준으로 시간표를 검색한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보자. 내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 집을 나서는 시간은 목적지에 도착한 이후 스케줄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더 많다. 내 경우엔 포항에서 결혼식이 12시 조금 넘어 열리므로, 서울에서 포항까지 이동하는 시간을 역으로 계산해서 집을 떠날 시간을 정해야 한다. 내가 편한 시간에 집을 나서는게 아니라, 포항에 도착한 후 이동하는 시간에 맞춰서 집을 나선다는 얘기다. 업무 출장이라면 더욱 그렇다. 출장지에서 거래처 사람 누군가를 몇 시에 만나기로 했다면, 그 약속시간이 내 출발시간을 결정한다.

이럴 때 출발시간을 기준으로 차편을 찾아주면 몇 번의 검색을 반복해야 한다. 이동 시간을 기준으로 적당한 출발시간을 선택해 차편을 찾고, 반드시 도착 시간을 확인해야 한다. 예매 가능 여부는 그 다음. 설령 예매가 가능한 차편이 보이더라도 '이것보다 좀 더 적당한 시간대가 없을까' 해서 다시 다른 시간대를 체크하기 마련이다.

반대로 도착시간을 기준으로 찾으면? 12시 도착이라고 목표 시간을 정하면 그 시간에 최대한 근접해서 도착하는 차편부터 먼서 표시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예약이 가능하면 바로 예약하고, 불가능하다면 이전 시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

그 주말에 이런 생각을 트위터에 올리자 '일종의 고정관념인 것 같다'는 의견이 왔다. 맞는 말이다. '출발->도착'이라는 말이 선후관계를 규정한다. 일종의 프레임이다. 은지원은 이 프레임을 깨고, 게임의 룰을 뒤집었다. '은초딩'이라 불리며 평소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보여주던 그의 진가를 다시 확인한 셈이다. 뒤집어보기, 비틀어보기. 뭔가를 기획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버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