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 속 땅 한 평

웹소설에서 발견되는 단점 세 가지

by mindfree 2018. 9. 23.

몇 달 전부터 웹소설을 즐겨 읽는다. 그 와중에 오래 전에 나온 판타지 소설도 몇 권을 읽었다. 국내 1세대 판타지 소설 작가라 할 수 있는 윤현승 작가의 "하얀 늑대들" 같은. 초기 판타지 소설을 좀 더 읽어볼까 하고 전민희 작가의 "세월의 돌"도 읽기 시작했는데, 4권에서 포기했다. 10권짜리 책이니 40%에 도달한 셈인데, 읽는 느낌으로는 이야기의 10%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서. 서론이 엄청나게 긴 이야기를 읽는 기분이라 버틸 수가 없었다. 초기 판타지 소설은 지금 나오는 웹소설에 비해 전개가 느리다는 말들이 있었는데, 나도 거기에 동의.

웹소설을 읽어보니 내가 예전에 읽던 '제도권 소설'과 확연히 구별되는 세 가지 단점이 있다. (제도권 소설이라고 칭하는 게 이상하다만, 신춘문예 같은 전통적인 과정을 거쳐 데뷔한 작가들이 낸 소설을 말한다.) 특징이 아니다. 단점이다. 그것도 내가 보기엔 많이 심각한.

첫 번째. 맞춤법 오류, 오탈자, 비문이 수두룩하다.

나는 한 두편을 빼면 모두 완결되어 e북으로 출판된 소설만 읽었다. 그럼에도 오탈자와 비문 문제가 심각했다. 전통적인 출판사의 담당 편집자 또는 교정, 교열 업무를 하는 사람이 없거나 아주 부족하다는 얘기다. 작가 본인이 연재 중에 퇴고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면 완결 이후에라도 퇴고를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은 책이 수두룩했다. 작품의 재미와는 별개 문제로.

두 번째. 한국어 어법에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

첫 번째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볼까. 캐릭터의 배경이 귀족이거나 왕족이면 거의 예외 없이 본인의 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른다. 한국어 어법에서 아버님, 어머님은 타인의 부모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본인의 부모 또는 조부모를 이렇게 부르는 경우는 한 가지 뿐이다. 돌아가신 경우다. 살아계신 아버지와 얘기하면서 "아버님"이라 부르는 건 패륜도 이런 패륜이 없는 셈이다.

일본어 번역투 문제도 심각하다. 

"00아, 그 이유를 말해봐라"

"이유입니까"

국내에 출판된 일본만화에서 주로 보이는 어투다. 비슷한 문장은 수도 없이 많다. 적이 쳐들어왔다! 적입니까. 내가 왜 배신했겠어, 돈 때문이다! 돈입니까. 애초에 일본어를 직역하면서 만들어진 어색한 표현을 보고 성장한 작가들이 이런 문장이 한국어 어법으로 보기엔 어색하다는 걸 모르기에 생기는 일이다. 그러다보니 사람 이름 뒤에 "들"을 붙이는 표현도 있다. 한국어 어법에서는 "홍길동 일행들" 정도로 불러야할 것을, "홍길동들"이라고 한다. 역시 일본만화에서 아주 많이 보이는 어법이고, 일본어를 번역하면서 그대로 가져온 표현이다.

TV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김영하 작가는 "작가는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많은 웹소설 작가들이 이야기를 구성하는 역량에 비해 문장을 쓰는 역량이 부족하다. "버려진 섬마다 꽃은 피었다"와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를 두고 몇 달을 고민했다는 김훈 작가만큼은 아니더라도, 기초적인 한국어 어법은 고민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세 번째. 캐릭터의 대사와 의성어/의태어를 뒤섞는다.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게 바로 이 문제다.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대사에는 의성어나 의태어를 포함하면 안된다. 캐릭터의 대사는 말 그대로 "말"이다. 의성어나 의태어는 말이 아니다.

"내가 그 자식을 다시 만나면... 으드득... 죽이고야 말거야"

같은 문장이 툭툭 튀어나온다. 으드득이 뭘까? 캐릭터가 이 말을 하면서 '이를 갈았다'는 뜻이다. 

"내가 그 자식을 다시 만나면!"

길동은 이를 갈듯이 인상을 쓰며 뱉었다.

"죽이고야 말거야"

이렇게 써야 하지 않나. 

심지어 이런 문장도 있다.

"아빠, 아앙. 오물오물. 맛있어요"

위 예시는 동일한 문장은 아니지만, "After: 생존의 법칙"이라는 웹소설에 실제로 등장한 표현이다. 주인공이 딸처럼 여기는 아이에게 밥을 먹여주는 장면에서 딸이 하는 대사다. 대사라고. 저게. 오물오물이. (재미 없는 소설은 아니다. 재미는 있다.)

하하. 큭큭. 후후. 클클.

웃음 소리를 대사에 넣는 것은 예외가 없다시피 해서 굳이 언급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하하"는 말이 아니다. 가수이자 연기자인 "하하"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면 소설에는 나와서는 안될 말인데, 안 나오는 웹소설을 찾는 게 빠를 지경이다.

펑. 퍽. 빡. 쾅. 휘릭.

이런 걸 쓰지 않고 상황을 묘사하는 작가를 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하얀 늑대들" 시기의 1세대 작가들을 제외하면 예외가 없다. 성장하면서 가장 익숙하게 접한 픽션이 만화라서 그런 것일까.

그럼에도, 웹소설을 읽는다. 재미는 있거든.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능력이 탁월한 작가들이 있다. 다만 만화처럼, 이들이 '스토리'를 쓰고 글은 문장력이 좋은 다른 사람이 썼으면 정말 좋았겠다 싶은 경우가 많다는 게 안타까울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