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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과 모바일

난 아이폰으로 책을 사고 영화 예매를 하고 싶다

by mindfree 2010. 2. 12.
인터넷으로 책을 처음 사던 때

내가 인터넷 쇼핑몰에서 책을 사기 시작한 것은 대략 97, 8년 쯤이다. 쇼핑몰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데, 어렴풋이 남아있는 기억으로는 도서 판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쇼핑몰이 아니라, 종합 쇼핑몰이었던 같다. 지방에 있었던 터라 구하기 어려운 책이 많았다. 특히 전공과 관련된 책이나, 전문 서적은 학교에 가끔 오는 책장사에게서 사거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 아저씨들 정말 엄청나게 비싸게 팔았다) 어쩌다 한 번 서울에 갈 때 대형 서점에 들러서 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시절이니 지방에서 쉽게 구하기 어려운 책을 인터넷으로 살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었다. '책을 사러 서울에 간다'는 얘기는 지금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그 때만 해도 당연한 일이었다.

예스24와 멀티 플렉스의 출현

예스24는 내가 책을 사는 방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똑같은 책을 서점에 가서 살 때보다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고 (더구나 도서정가제가 도입되기 전이니 가격 경쟁이 더 치열했다), 거기에 더해 포인트까지 쌓아주는 서비스라니. 단점이라면 책을 주문하고 실제로 받아보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렸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한데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면서부터 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아니, 사실상 서점에 가지 않았다고 봐야지. 누굴 기다리기 위해 서점에 들어가는 거 외에는 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도 멀티 플렉스가 등장했다. 어느 극장에서 개봉했느냐를 찾아 그 극장 앞에 한참을 줄 서 표를 사던 시절은 이제 추억 속으로 접어 보내고, 일단 영화관에 가서 시간에 맞는 영화를 골라 보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우리나라를 휩쓴 인터넷 광풍에 걸맞게 영화 예매도 인터넷으로 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 도착해 매표소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을 비웃으며 한산한 예매 전용 창구에서 발권을 하던 시절이다.

이젠 인터넷으로 예매하고 표를 찾을 때 매표소로 가지도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극장에는 무인 발권 시스템이 있고, 그 기계로 가서 회원카드를 긁거나, 주민등록번호만 넣으면 표를 인쇄할 수 있다. 영화표 예매부터 현장 발권까지 사람이 필요없다는 뜻이다. 인터넷 예매 사이트에서 예매를 하고, 무인 발권 시스템에서 표를 찾는다.

스마트폰의 출현

아이폰을 쓰기 시작한지 두 달이 조금 넘었다. 출퇴근 시간엔 아이폰으로 트위터를 하고, 블로그를 구독하고, 이메일을 읽고, 음악을 듣는다. 만화를 보고, 강연을 보고, 책을 읽고, 게임을 하고, 커피숍을 찾고, 버스 도착 시간을 확인하고, 지하철 노선을 찾고, 지도를 보고 약속 장소를 찾아간다.

컴퓨터를 접한 뒤 처음 온라인에 접속하기 시작했는데, 아이폰을 만난 후로는 온라인에 접속한다는 개념도 없어졌다. 온(On)오(Off)일체.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뒤섞이기 시작했고, 온라인이면서 동시에 오프라인인 기묘한 생활을 하고 있다.

아이폰이 온라인을 현실로 옮겨왔지만, 아이폰으로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구매. 쇼핑이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기 시작한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책은 서점에서 살펴보고 사고 싶은 욕구가 있다. 서점에 들러 꽉 들어찬 서가를 걸으며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들고서 읽고 싶다. 그러고 싶으면 서점에 가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문제지. 내 단골 서점인 알라딘에서 사면 더 싸잖아. 여러 권을 사서 무겁게 들고올 필요도 없잖아. 그러나 못한다. 아이폰에 설치한 바코드 스캔 어플리케이션으로 책의 바코드만 찍으면 이 책이 인터넷 서점에서 얼마인지, 어디가 가장 싼지도 검색을 할 수 있는데, 정작 살 수는 없다.

친구와 이야기를 하다 '얼마 전에 개봉한 그 영화 뭐지?' 하면 아이폰으로 찾아볼 수 있다. 영화 줄거리, 출연진 정보, 평점. 아이폰으로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표는 못산다. 최근 유행하는 상품 정보, 최저가 검색, 다 된다. 그러나 살 수는 없다.

뭐가 문젠가?

뭐가 문제인가. 기술이 안되나? 파는 데가 없나? 천만의 말씀이다. 기술은 충분하다. 인터넷에서 안파는 물건도 없다. 단 하나. 결제를 못한다. 최근에 지마켓이 아이폰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결제 시스템을 도입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철회했다. 왜? 이유는 간단하다. 액티브X로 만든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으니, 보안에 취약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이러이런 프로그램을 깔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면 반사적으로 '예'를 누르도록 전국민을 세뇌한 주범이 엑티브X로 만든 보안 프로그램인데 역설적으로 보안을 강화하려면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예'를 누르면 행동을 멈추는 것이 첫걸음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모른척 한다. 제 아무리 좋은 자물쇠를 달아도 노크만 하면 반사적으로 문을 열어주는데 도둑을 어떻게 막나. 비싼 자물쇠를 달기 전에 '문 밖에 선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고' 문을 열어주라고 교육하는 게 우선인데 말이다.

가타부타 말 말고, 아이폰으로 책 사고 영화 예매를 하고 싶다

잔말 필요 없다. 난 아이폰으로 책을 사고, 아이폰으로 영화 에매를 하고 싶다. 지하철에서 아이폰으로 영화 블로그를 보다 끌리면 그 자리에서 예매하고, 지하철에서 내려서 바로 극장으로 가고 싶다. 마음에 드는 책을 보면 책 제목을 적어놓는 대신, 그 자리에서 책을 사고 싶다.

누가 그렇게 하겠냐고? 10년 전만 해도 누가 인터넷으로 쌀과 라면을 살 생각을 했나? '옷은 직접 색깔을 보고 만져보고 사야지' 하던 게 불과 10년도 안됐다. 지금 인터넷 쇼핑몰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이 뭔지 아는가? 옷이다. 아이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는 판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정보의 검색과 탐색에서 구매까지, 그 자리에서 가능하다. 길이 있는데, 갈 수 없다.

난 애플이 미디어 유통 시장을 장악해도 좋다

난 애플이 미디어 유통 시장을 장악하고, 절대 강자로 떠올라도 좋다. 우리는 지금 애플을 걱정할 때가 아니고, 애플이 시장을 장악한 후를 염려할 때가 아니다. 지금은 지마켓처럼 거대한 쇼핑몰이 해외 비즈니스를 꿈꾸지 않는 현실과 어처구니 없는 규정에 발목 잡힌 비즈니스 기회를 안타까워할 때다. 아이폰이 일그러진 현실을 바로잡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면, 사악한 애플에 대한 고민은 그 뒤에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