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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과 모바일

책과 음악, 소유의 시대는 끝나는가

by mindfree 2010. 2. 3.
나는 책을 사는 것을 즐긴다(과소비, 정도 수준은 못된다. 그게 꿈이긴 하다만). 읽는 것은 사는 것보다는 조금 덜 즐긴다(역시 다독 수준은 못된다. 그게 꿈이...). 그러나 좁은 방에 혼자 살다보니 점점 늘어만 가는 책들을 보관하는 것도 쉽지 않다. 고작 500권도 채 안되는데, 이미 내 방에서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은 다 차버렸다. 아무리 꾸역 꾸역 집어넣어도 650권 정도가 한계일 듯 싶다.

나는 디지털 음원을 사지 않았다. 냅스터가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고, 그 서비스를 따라 한 소리바다가 국내에 처음 선보였을 무렵,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공짜로' 다운받았던 시기를 제외하면 디지털 음원을 구입한 적은 없었다. 좋아하는 가수의 새 음반이 나오거나,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 된 음악가의 음반을 사서 포장을 벗기고 자켓 사진을 보고, 가사집을 훑어보면서 그 음악을 듣는 시간은 대개 내 나이 또래의 사람들이 그렇듯 LP 시대를 거쳐오며 남은 유산이다. 그나마 나이를 먹다보니 점점 음악적 취향이 편협해져서 늘 듣는 음악만 듣는다. 그렇다보니 일년 동안 새로 구매하는 음반의 수도 몇 안된다.

최근에 와서야 디지털 음원을 다운받았다. 내가 그동안 디지털 음원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것은 '거기 가봐야 요즘 애들 좋아하는 2PM, 이런 애들 음악이나 있겠지' 하는 -말도 안되는- 편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가서 검색을 해보니, 결과는 놀라웠다. 심지어 산울림 1집도 찾았다. 바로 월정액에 가입했다. 그러나, 내가 가입한 요금제는 과거의 유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요금제다. 시디를 사지 않고, 디지털 음원을 다운받는 것으로 형식은 바뀌었지만, 물리적인 속성이 달라졌을 뿐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점에서는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 매월 정해진 금액을 내면, 정해진 곡수를 다운받을 수 있는 요금제. 다운받은 곡은 물론 DRM을 적용하지 않은 음원이고, 평생 소장할 수 있다.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속성을 가진 음반에서 손에 잡히지 않는 디지털 음원을 소유한다는 것만 다를 뿐, 무언가를 소유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며칠 전 애플이 iPad를 발표했다. iPad는 그간 킨들, Nook 등이 주름잡던 e북 리더 시장의 강력한 경쟁 제품으로 등장한 모양새다. 소파에 앉아,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듣고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똑같다. 그러나,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사람들의 손에 쥔 것이 달라졌다. 종이에 인쇄된 책이 없어지고, e북 리더라는 디지털 장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시디를 재생하는 오디오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아이팟 같은 MP3P가 차지한다. 오디오는 이제 재생 기능이 없어도 된다. MP3P의 내장 스피커보다 뛰어난 성능으로 음을 증폭시켜주기만 하면 제 역할을 다하는 셈이다.

음악은 이미 음반 시장이 아니라, 디지털 음원 시장이 대세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음반유통사는 애플이다. 그러나 매체의 물리적 속성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음악을 소유한다. 시디꽂이에 시디를 꽃아두던 시기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나 MP3P의 메모리로 음악을 저장해둘 뿐이다. 이건 아이튠즈가 엄청난 힘을 가진 해외의 얘기다. 우리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디지털 음원 유통업자인 벅스, 소리바다 모두 스트리밍 요금제를 판매한다. 음원을 다운로드 받아 소유하지 않고, 일정한 돈을 내면 무제한으로 실시간 스트리밍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한 번 생각해보자. 내 경우엔 집과 사무실 모두 무선 인터넷이 가능하다. 실시간으로 음악을 스트리밍해서 듣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3G망을 사용하지 않으니 추가로 비용도 들지 않는다. 이론적으로는 내가 평생 벅스에 돈을 내고 가입해 있다면, 난 평생 음악을 소유한 것과 마찬가지다. 언제든 내가 원할 때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찾을 수 있는 음반가게가 평생 내 바로 옆에 있는 셈이다. 더구나 이 음반가게의 크기는 엄청나게 광대해서 내가 원하는 음악은 거의 다 구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음원을 다운받을 이유가 뭔가? 내가 굳이 음원을 다운받아 소유하고 있을 이유가 뭔가? 내가 원하는 음악을 언제나,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면 굳이 이것들을 사서 가지고 있을 이유가 뭔가?

책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e북은 구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종이로 만들어지지 않은 디지털 파일을 사서 e북 리더기에 다운받아서 넣어놓고, 읽는다. 한 번 구입한 책은 평생 소장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도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만약 음악과 마찬가지로, 월정액을 내고 내가 원하는 책을 실시간으로 내려받으며 읽을 수 있다면?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다음 페이지를 내려받고, 다시 다음 페이지를 읽는 동안 그 다음 페이지를 내려받는 형태-혹은 다른 형태-로 스트리밍 서비스를 한다면? 디지털 책을 소유하지 않고, 서비스 기간 동안 접속해서 읽기만 한다면, 굳이 e북을 사서 소유할 필요가 있을까?

음원과 다를 바 없다. '아이북스', '벅스e북', 'e교보' 뭐 이런 e북 서비스 업체에 가입해 평생 일정한 돈을 내고 책을 본다면 굳이 다운로드받지 않더라도 내가 그 책을 평생 소유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종이에 인쇄된 책은 아닐지라도,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볼 수 있다는 점은 똑같다. 더구나 디지털 파일은 검색이 간편하고, 필요한 부분 발췌도 더욱 손쉬울 터다. 내 방에 단 한 개의 책꽂이도 들여놓지 않았지만, 난 세계 최대 규모의 도서관을 소유한 것과 다를 바 없다.

미국의 DVD 대여 업체 넷플릭스에서 하는 말이 있다. 니가 빌려간 DVD, 평생 가져도 좋다. 평생 월정액을 내기만 한다면. 디지털 파일은 더욱 쉽다. 평생 언제든지 원할 때 꺼내볼 수 있다. 평생 월정액을 내기만 한다면.

음악과 책은 이제 디지털 파일로 변하고 있다. 음악은 시디 시대로 오면서 사실상 오래 전에 디지털화했지만, 이젠 '시디'라는 매체도 없어졌다. 책도 마찬가지다. 이미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물리적인 매체를, 내 바로 옆 손에 잡히는 곳에 두어야만 소유하는 시대는 지났다. 디지털 파일로 변한 이상 물리적인 위치가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웹 시대에는 현실을 온라인에 집어넣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젠 모바일 시대다. 모바일 시대에는 온라인을 현실에 집어넣는다. 언제 어디서나 온라인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시대, 이미 우린 그 시대에 살고 있다. 소유의 개념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