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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과 저작권

저작권의 이해 -CC에반젤리스트 과정 커리큘럼을 위한

by mindfree 2011. 3. 12.
아래 글은 CC Korea에서 활동가들이 진행하는 프로젝트(참 오랜만에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의 일환으로 만든 'CC 에반젤리스트 과정'을 위한 기초 문서로 제작한 것이다. 내가 맡은 챕터는 저작권에 대한 이해. 타이틀은 거창한데, 내가 법률가도 아니고 더구나 이 과정을 수행할 대상자들 역시 법률가가 아니라 일반인임을 감안해서 읽어주면 좋겠다. 오히려 너무 법률의 관점에 메이다보면 딱딱한 내용이 되기 쉬워 가급적이면 피하려 했다...... 만, 젠장. 글을 써놓고 보니 무지하게 딱딱하다. 뭐 암튼, 이 글은 CC활동가들과 함께 만들어갈 가이드북 및 커리큘럼의 기초 자료이므로 나중에 좀 더 나아지리라 생각함.

맨 처음 잡은 목차에는 '저작권과 CC'도 포함되었으나, 쓰다보니 어차피 CCL과 CC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저작권과 CC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할 듯 해서 뺐다. 간단히 말하면, CCL은 저작권 제도의 기반 위에서 움직이는 것이고, 저작권이 없으면 CCL도 없다. 요게 GPL 같은 라이센스와 CCL이 차이점이기도 함. (아울러 그 분들에게 욕을 먹는 이유이기도)

덧: CC Korea 프로젝트 리드 윤종수 판사님이 GPL에 대해 지적을 해주셔서 정정. GPL 역시 저작권 제도 기반 위에 작동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며, 다만 CCL에서 '비영리' 조건을 추가해서 저작물을 비영리 목적에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점에 대해 비판이 있다.


저작권의 이해

목차

1. 저작권이란
2. 저작권 제도의 흐름
3. 저작권과 창작자

저작권이란

저작권은 저작물(미술, 음악, 소설, 시, 무용, 건축 등)을 만들어낸 이가 그 저작물에 대해 갖는 권리를 말한다. 가령 철수가 단편소설 하나를 쓰면, 그 소설을 출판하거나 전송하거나 복제할 권리를 스스로 갖게 되며, 다른 사람은 철수의 허가를 받기 전에는 철수가 쓴 소설을 출판하거나 복제할 수 없다. 우리의 경우 무방식주의를 채택하기 때문에 철수는 소설에 대한 저작권을 인정받기 위해 별도 등록이나 신청을 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보는 저작권 기호(동그라미 안에 알파벳 ‘C’가 적힌 기호)를 표시하지 않더라도 저작권을 행사할 수 있다.

저작권은 크게 저작인격권과 저작재산권으로 나뉜다. 저작인격권은 성명표시권, 공표권, 동일성 유지권으로 구성된다. 성명표시권은 저작물에 자신의 이름을 밝힐 권리이며, 공표권은 저작물을 발표할 권리, 동일성 유지권은 자신의 저작물이 동일한 의도, 형식을 지니도록 하는 권리를 말한다. 저작인격권은 저작물을 만든 이에게만 주어지는 권리이며, 설령 해당 저작물을 출판하거나 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누군가에게 주었다 하더라도 관계 없이 만든 이에게 그대로 유지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저작권은 저작물에 대한 재산적 권리인 저작재산권을 가리킨다. 따라서 철수가 쓴 단편소설을 출판사에 넘겨 출판을 할 수 있도록 계약한 경우 출판사는 철수의 단편소설에 대한 출판권을 갖게 될 뿐이며, 그 소설의 줄거리를 바꾸거나 구성을 변경할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다.

저작물이 만들어진 시점에 생겨나는 저작권은 이후 저작권자가 사망할 때까지 그리고 사망한 이후 50년 동안 유지된다. 미국의 경우 1998년 하원의원 소니 보노가 발의한 ‘소니 보노 저작권 보호기간 연장법안’(Sonny Bono Copyright Term Extension Act)에 의해 저작권자가 사망한 이후 70년까지 저작권이 유지된다. 소니 보노 법안으로 인해 2004년에 저작권이 만료될 예정이던 미키마우스의 저작권 보호 기간이 2024년까지 늘어나면서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고도 불린다.

저작권에 대해 말할 때 중요한 것 하나는 저작권법은 저작물의 표현을 보호하는 것이지,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것은 아니라는 데 있다. 철수의 소설은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지만, 이 때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것은 철수의 소설에 담긴 표현이며, 소설이 표방하는 아이디어 자체가 보호 받는 것은 아니다. 미키마우스 역시 ‘미키마우스의 외형, 색깔 등 표현요소’가 보호를 받는 것이지 ‘사람과 비슷하게 손발을 그려넣어 귀엽게 만든 쥐의 그림’이라는 아이디어가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니다. 동일하게 쥐를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게 그린다 하더라도 표현 방식이 미키마우스와 다를 경우에는 별개의 저작물로 인정을 받는다. 이 점이 아이디어를 보호하는 특허와 다른 점이다.

저작권 제도의 흐름

저작권의 탄생은 인쇄술의 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는 책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쓰는 것 외에는 배포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책이라는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면 족했다. 그러나 쿠텐베르크가 인쇄술을 개발하면서 책을 대량으로 복제하고 유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것이 지식의 확산과 함께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특정인에게 한정하는 것이 중요해진 계기가 됐다. 이에 따라 제정된 앤 여왕법(영국, 1710년)은 책을 출판할 수 있는 권리를 특정 출판업자에게 주어 출판업자의 이윤을 보호하는 동시에 일정 시간(14년, 최대 28년)이 지나면 저작권을 풀어 지식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일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초창기 해도, 지도와 책에 한정해서 적용되던 저작권법은 점점 그 적용 범위가 넓어졌고, 지금은 소설·시·논문·강연·각본·음악·연극·무용·회화·서예·도안·조각·공예·건축물·사진·영상·도형·컴퓨터 프로그램·작곡·영화·춤·그림·지도 등 거의 대부분의 저작물에 적용된다. 이것은 창작물의 범위를 넓게 보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술의 발전으로 새로운 매체가 지속적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생긴 변화이기도 하다. 가령 음악의 경우 축음기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비록 자동 피아노 같은 기술이 있기는 했으나- 한 번의 현장 공연 외에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악보에만 권리를 부여하면 되었다. 그러나 축음기의 발명은 이 기준을 무너뜨렸고, 한 번 연주한 음악을 복제해서 반복해 듣거나 다른 사람에게 음반의 형태로 판매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저작권 제도 역시 변화해서 음악을 작곡한 사람 외에 작곡한 음악을 노래하거나 연주한 사람들까지도 일정한 권리를 부여하는 형태로 변화했다(저작인접권). 이후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발명은 또 다른 제도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이후 베른 협약(1886년)이 체결되고, 많은 나라들이 베른 협약에 가입하면서 저작권법은 차츰 국제적으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계 지재권 기구 조약 등이 체결되면서 전송권 등이 추가되고, 세계무역기구의 출범에 따라 지적 재산권을 무역 규범에 포함해 보다 강화했다.

초기의 저작권법에서 말하는 저작권은 말 그대로 복제할 수 있는 권리(Copy+Right)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나 점차 이 권리는 전송권, 공연권, 2차 저작물 작성권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아울러 14년 동안 권리를 갖고, 이후 저작자가 생존해 있는 경우 다시 14년 동안 권리를 보유한 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이는 저작물(공공 저작물, Public Domain)으로 넘어가도록 함으로써 저작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의 균형을 맞추도록 했다. 그러나 이후 이 보호 기간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금은 저작권자가 사망한 후 50년까지 권리를 보호한다. 다시 말하면 이 기간이 지나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저작물을 이용해 공연하거나, 변형을 가해 2차적 저작물을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저작권법은 초기의 뜻과 달리 점점 저작권자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 중 저작권자의 이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변화했다. 더구나 산업의 발달과 함께 거대 자본의 등장으로 인해 실제 저작권자의 이익보다 그 저작물의 권리를 대행하는 유통업자의 이익을 강화하는 측면이 부각되고 말았다.

저작권과 창작자

저작권은 저작물을 창작한 창작자에게 주어지는 권리이다. 이는 창작자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권리를 보유하고, 이를 복제, 유통시킴으로써 창작에 대한 보상을 받도록 한다. 그러나 창작자는 자신의 저작물을 향유할 대중이 있음으로 해서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저작권법은 저작물을 향유하는 대중이 다양한 문화를 즐기고, 지식을 늘려갈 수 있도록 하는 것에도 목적을 둔다. 이 점은 저작권법에도 분명하게 명시되었다. (저작권법 제1조(목적) 이 법은 저작자의 권리와 이에 인접하는 권리를 보호하고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도모함으로써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창작이란 개인이 그 때까지 쌓아온 지식과 경험을 모두 동원하는 과정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듯이 어떤 창작자도 전 세대의 창작자들이 만들어놓은 유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가령 오늘날의 문학, 영화, 연극, 뮤지컬의 서사 구조는 세익스피어와 같은 대가들이 만들어놓은 서사 구조의 틀을 바탕으로 발전한 것이며, 그 외의 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전 세계를 아우르는 문화 제국을 구축한 디즈니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디즈니의 유명한 애니메이션 ‘알라딘’, ‘백설공주’, ‘신데렐라’, ‘알라바바와 40인의 도둑’, ‘인어공주’ 같은 작품 가운데 온전히 디즈니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단 한 편도 없다. 모두 선대 창작자들의 창작물을 각색해서 재탄생시킨 작품이다. 미키마우스가 등장한 디즈니의 초기작 ‘증기선 윌리’ 역시 무성영화 ‘증기선 빌리’를 패러디한 2차적 저작물에 속한다.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창작자는 선대 창작자들의 창작물에 영향을 받을 뿐 아니라, 나아가 선대 창작자들의 창작물을 다른 형태로 변형하거나 재해석 하는 것으로도 창작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가령 소설로 발표된 작품을 연극으로 변형하거나, 여러 연극을 모아서 또 다른 연극을 만드는 형식으로도 가능하다. 이것이 현대 기술을 만나면 하나의 음원을 변형해 여러 형태의 음악을 만들거나, 다른 사람의 멜로디에 다양한 연주를 접목시켜 또 다른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다. 창작 과정 자체만 본다면 이 과정에 필요한 것은 그것을 가능케 할 감성과 약간의 기술적 연관 지식 뿐이다.

디즈니가 ‘증기선 윌리’를 만들던 시절에는 이것이 어렵지 않았다. 당시 저작권법은 저작권자 사후 28년까지만 저작권 보호 기간을 두었으므로, 비교적 근시대의 작품을 변형해 2차적 저작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저작권자의 마지막 창작물인 경우 30년 안팎의 작품이므로 문화적 괴리도 그만큼 줄어들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은 판이하게 다르다. 저작권자 사후 50년(미국의 경우 70년)은 저작권자 생전의 마지막 창작물이라 하더라도 이 작품을 활용해서 다른 저작물을 만들기 위해선 50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디즈니가 활동하던 1900년대 초반과 21세기에 넘어온 지금과의 사회 변화의 속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이는 큰 차이임이 분명하다. 짧아야 50년, 길면 거의 1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난 저작물을 오늘날에 맞게 변화시키는 것은 세월의 길이만큼 어렵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변화한 매체의 차이-가령 50년 전 유성영화 필름을 디지털화하지 않으면 오늘날 재생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다-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저작물 향유자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약간은 다를지 모르나 맥락은 비슷하다. 일단 저작물의 보호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과거의 사람들과 달리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한 비용이 더 필요하다. 공공 저작물(Public Domain)에 포함된 작품은 이를 즐기기 위한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으나, 오늘날 우리가 즐길 수 있는 공공 저작물은 대개 1930년대 이전까지의 저작물로 한정된다. 대중가요의 경우 ‘오빠는 풍각쟁이야’(1938년)가 사실상 가장 최근의 작품인 셈이다.

또 다른 문제는 저작권자는 있으나 더 이상 발행, 유통되지 않는 저작물의 경우이다. 이것은 앞서의 상황보다 조금 더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대표적인 저작물인 도서의 경우를 보자. 국내 출판사는 약 3만개 이상이며, 이들이 발행하는 책은 연간 5만여 종, 하루 평균 150종에 달한다. 1년이 지난 뒤 5만여 종의 책 중 지속적으로 유통되는 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5년만 지나면 몇 종 되지 않는 스테디셀러를 제외하면 대부분 절판되어 책을 발행한 출판사에서조차 책을 구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정 책이 절실히 필요한 일부 독자들조차도 책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책을 소유한 누군가가 책을 복제해서 배포하면 불법행위로 처벌을 받는다. 돈을 들여 구하려는 독자가 있다 해도 저작권자가 더 이상 책을 유통시키지 않고, 동시에 그 권리를 포기하지 않음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창작자는 창작을 위한 아이디어를 얻거나 창작의 토대가 되는 선대의 창작물을 얻기 위해, 향유자는 자신이 원하는 창작물을 손쉽게 얻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제도가 바로 저작권 제도이다. 올바른 저작권 제도는 사익과 공익 사이의 균형을 맞추어 양측의 요구를 모두 수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저작권 제도는 저작권자에게 과도한 권리를 제공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쓰여지는 공공 저작물의 절대적인 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 그나마 이 과정에서 실제 창작자가 이익을 볼 수 있다면 불행 중 다행이겠으나 현실은 저작물을 유통하는 거대 자본이 실제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