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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L과 저작권

CCL은 저작권을 표시하는 라이선스가 아니에요

by mindfree 2009. 4. 23.
CC Korea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가끔 CCL(Creative Commons License)에 대한 질문이 올라온다. 링크한 질문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판타지 소설을 쓰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에 올렸더니 누군가 그 글을 가져갔다. 상업적인 용도로 쓰인 것은 아니지만 조금 인기도 있었다. 이 소설에도 CCL을 적용할 수 있나.

안타깝게도 이 질문을 하신 분은 CCL을 정말로 잘못 이해하고 계신다. CCL은 자신이 만든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 표시를 하는 라이선스가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에 가깝다. 내가 만든 저작물을 타인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해서,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이용할 수 있느냐를 명시해주는 것이 CCL이다. 이것을 내가 만든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을 명시하는 라이선스로 오해하는 분이 많다.

내가 무언가를 창작했다면, 그 순간 그 저작물에 대한 모든 권리는 나한테 귀속된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작권의 기본이다. 배타적 권리. 그 권리를 저작자에게 주고 인정하는 것. 그런데 문제는 모든 창작자들이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동일한 방식의 권리를 행사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예를 들자면 이렇다.

철수가 통기타를 이용해서 노래를 한 곡 작곡했고, 그걸 연주해서 녹음한 다음 블로그에 올렸다. 회사원인 철수는 그 노래를 팔아서 돈을 벌 생각은 별로 없고, 그냥 자신이 만든 노래를 여러 사람들이 들어주었으면 한다. 아울러 프로페셔널 뮤지션이 이 노래를 CD에 담아 판매해도 좋겠다는 생각도 있다. 그 CD 자켓에 '작곡 김철수'하고 표시되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도 한다.

기존 저작권법으로는 이러한 철수의 바램을 해결해줄 방법이 없었다. 이러한 철수의 바램을 명시해서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CCL이다. 철수는 아래와 같은 CCL을 적용하면 된다.

Creative Commons License

위 옵션은 '저작자 표시' 조건 하에 철수가 만든 음악을 이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그 노래의 원 저작자가 철수라는 것을 밝히기만 한다면 누구나 이 노래를 듣고, 다운 받고, 편곡하고, 변형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철수의 노래을 돈을 받고 팔아도 된다. 그런데 CCL을 적용한 한국어 컨텐츠 중에서 이 라이선스를 적용한 것은 극히 일부분밖에 없다.

왜일까? 뻔하다.

"아니 내가 만든 걸 왜 딴 놈이 돈 받고 팔아?"

이런 마음 때문이다. 그럼 '당신은 그걸 돈 받고 팔거냐'고 물으면, 그렇지는 않다. 철수는 그 곡을 판매될만한 퀄리티의 CD로 제작한 돈도 없고, 능력도 없다. 그리고 그걸 어디서 팔아야할지도 잘 모른다. 오히려 이걸 팔려고 들이는 돈이 정작 판매되서 벌 수익보다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 이 곡을 갖고 누군가 장사를 하는 걸 막을 이유가 뭐지? 어차피 철수에게 이 곡은 전혀 돈이 될 가능성이 없잖아. 만약 철수의 곡을 누군가 유통시켜서 돈을 벌었다면 철수는 손해를 본 것일까?

끝으로 여러분들도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지금의 저작권법이 과연 저작자를 위한 것일까, 아니면 저작자를 대행하는 거대 유통사를 위한 것일까. 저작권법이 진짜로 보호하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