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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등등

묘한 꿈을 꾸다

by mindfree 2010. 3. 8.
몇 년간 블로그를 운영해 오고 있지만 꿈 이야기를 쓴 것은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고등학생 시절, 주사기에 든 액체를 사람 몸에 쫙쫙 뿌리며 테러(?)를 하는 사람들을 피해 인적이 끊긴 어두컴컴한 도심을 이리저리 도망 다니는 꿈을 꾸기도 했고(이런 꿈이야 뭐 사춘기 소년이 흔히 꿀 법한), 고 3때는 학력고사 전날 밤에 다음날 실기시험에 나올 석고상을 꿈에서 보기도 했다. (위치는 조금 달랐다) 그 때는 시험에 나올 석고상을 미리 봤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미리 발표한 3개 석고상 중 하나가 출제되는 시험에서 33%의 출제 확률을 가진 석고상을 꿈에서 본 정도는 흔한 우연에 불과하다. 불과 몇 년 전엔 하룻밤에 두 번 연속으로 죽을 뻔하는 (전장에서 상대의 칼 혹은 창에 찔리기 직전에 잠에서 깨는) 꿈을 꾸기도 했다.

어제 밤에 꾼 꿈은 이렇다. 어떤 곳인지 모르지만, 어두컴컴한 곳에 들어가 신발을 벗어 머리맡에 두고 누웠다. 바닥엔 아주 지저분한 깔개(얼핏 박스 종이 같기도 한)가 깔려있고, 난 담요 같은 것을 덮고 누웠다. 발 바로 밑에는 커다랗고 네모난 기둥 같은 것이 있어 다리를 쭉 펴지도 못하는 상태. 꿈 속에서 '머리를 좀 더 위로 올리면 다리를 펼 수 있잖아?'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이상한 기척을 느껴 잠에서 깼는데, 눈을 뜨고 보니 고양이가 내가 잠에서 깬 것을 보고 방 구석으로 뛰어간다.(어딘지 몰랐던 공간이 그 새 방으로 변해 있다) 귀찮아 하며 방문을 열고 고양이가 방 밖으로 나가기를 유도한 뒤 다시 돌아와 눕는데, 고양이 울음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고 보니 문이 조금 열려 있고, 열린 문 틈으로 새어들어온 빛에 문 바로 안쪽에 웅크리고 있는 새끼 고양이 -로 보이는- 까만 물체 두엇이 보인다. 이게 뭔가 싶어 일어나 불을 켜니, 세상에. 방 바닥이 온통 거미다. 흔히 집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자그마한 거미. 깜짝 놀라 거미를 밟지 않으려 조심하며 신발 쪽으로 걷는데 이미 거미는 내 발에 밟혀 터진다. 거미를 밟은 양말을 벗어 던지며 신발을 신었다.

갑자기 같이 자던, 혹은 다른 방에서 자고 있던 형을 깨워 황급히 집 밖으로 나갔다. 형은 아직 잠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 나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형을 집 앞쪽 길가에 둔 채 어디론가 간다. 내가 걱정스레 형을 돌아보는 사이 형이 기침을 한다.

중간 기억 없음.

다시 집 쪽으로 돌아오는데, 분명 집이 있는 곳을 지나쳤는데도 집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다. 되돌아가보니 다리처럼 어디론가 연결된 곳이 중간에 끊어져 있다. 바로 앞에 사람들 몇 명이 벤치에 있어 '여기 있던 집이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더니 '홍수가 나서 다 쓸려갔다'고 한다. 형은 어디로 갔을까. 형을 확실히 잠에서 깨우지 못한 채 그냥 나온 것이 마음에 걸려 울컥 하는데, 갑자기 다가온 누군가(아마도 여성)가 우리를 보고 '혹시 xxxx 아니냐'고 묻는다. (xxxx는 단어가 기억나지 않음) 그러더니 갑자기 카메라를 꺼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고, 내가 그들을 화면에 이리저리 담아 (카메라 액정에 비친 그들은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 사진을 찍으려 하다 깼다.

위 꿈이 기묘한 이유는 고양이, 거미를 난생 처음 꿈에서 봤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닥에 가득 깔린 거미라니. (난 거미를 혐오하지는 않는다. 물론 방 안에 거미가 있는 걸 좋아하지는 않지만, 대개 우리 집 주변의 거미는 해충을 잡아 인간에게 이로운 생물이다) 꿈에서 '홍수가 나서 집이 쓸려갔다'는 말을 들은 것도 처음이다. (물론 실제 경험은 없다.)

꿈이 앞일을 예견한다든가 하는 말은 믿지 않지만, 고민거리가 많거나 할 때 일상에서 생각하던 것이 꿈에 반영된다는 것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예지몽을 믿지 않는 것은 사후에 스스로 조작한 기억이거나 -이런 경우 본인도 자신이 기억을 조작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몇 가지 꿈의 단편을 조합해서 만들어낸 작위적인 기억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제 밤 -정확히는 오늘 새벽 6시경에 깼다- 의 꿈은 잠에서 깨는 순간 '아니 뭐 이런 꿈이' 하는 마음에 최대한 세세하게 꿈을 기억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 역시 정확한 기억이라 할 수는 없다. 꿈에서 깬 직후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끊어진 조각을 이으려 의식적으로 노력했고, 그 사이 꿈에서 깬 이후의 내 의식이 만들어낸 기억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그럼 왜 이런 걸 적고 있느냐. 그럼에도 묘하거든. 흐흐. '꿈에 고양이가 나오면' 따위의 말은 엉터리라 생각하지만 (적어도 '고양이'가 상징하는 의미를 알아야 그것이 무언가를 상징할 수 있다. 고양이가 뭘 상징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의 꿈에 나온 고양이가 뭔가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터무니 없다) 사람이란게 참 묘해서 그런데도 '이게 혹 뭔가를 상징하는 것은 아닌가' 궁금하단 말이지.



뭐.
사실은 그냥 개꿈이지. 크하.